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성근/지도자 경력 (문단 편집) === 치바 롯데 마린즈 인스트럭터 부임 === || [[파일:김성근이승엽.jpg|width=300]] || || {{{#ffffff ''' 김성근과 이승엽 ''' }}} || > "[[의사소통]] 과정이 복잡했다. 그때 '''한국인 코치'''가 있었으면 싶었다" > -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241&aid=0002752644|이승엽]] 김성근이 2년여 동안의 야인 생활을 청산하게 된 것은 2005년 일본의 퍼시픽 리그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활약하던 [[이승엽]]의 전담 코치가 되면서 부터였다.[* 그런데 사실 인스트럭터 일 자체가 처음에는 그동안 김성근이 해오던 출장 코치의 연장선상이었다.] 당시 이승엽은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으며, 일본 잔류와 국내 복귀를 놓고 고민하고 있던 시기였다. 특히 이승엽은 의사소통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당시 치바 롯데의 [[바비 발렌타인]] 감독과 타격 코치 모두 미국인이었기 때문에. 이승엽의 담당 통역이 한국어를 일본어로, 타격 코치 담당 통역이 일본어를 영어로 바꿔 얘기했다. 그런데 담당 통역이 제 역할을 못해서 이승엽의 불만이 많았다.[* 2000년대 초반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이런 비슷한 통역 문제들이 많이 발생했다. 90년대 초창기에 간 [[박찬호]]나 [[추신수]]는 제대로 된 통역조차 없어서 본인이 영어를 배워야 했으나 2000년대 초반에 이르면 당시 일본, 한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는데, 상당수의 팀들은 전문 통역인을 붙여줬다. 하지만 야구에 문외한인 통역들은 야구 용어나 야구선수들과 코치들 간의 야구 언어와 미세한 컨디션 등을 제대로 통역하지 못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2000년대 후반부터는 야구를 제대로 아는 선수 출신이나 코칭스태프 경력, 하다 못해 프런트 경력이라도 있는 사람을 통역으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성민규]]가 한국인 선수 통역으로 기용된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이처럼 당시 통역 문제와 일본 프로야구계에서 문화적인 차이 등으로 고충이 많았던 이승엽은 한국어와 일본어에 모두 능통하면서 일본 야구판에 대해서 해박한 사람을 찾았다. 특히 재일교포 출신 김성근은 한국에서는 일본 야구에 가장 정통하고 일본야구계와 인맥도 많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기도 해서, 일본 야구인들이 함부로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결국 이승엽은 이런 의사소통, 즉 [[통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단에 요청해 김성근을 개인 전담 인스트럭터로 영입했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241&aid=0002752644|#]] [[http://web.archive.org/web/20050417220633/http://www.so-net.ne.jp/marines/topics/detail/20050415163538.html|당시 치바 롯데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 페이지 아카이브]] 당시 김성근의 직함은 '팀 코디네이터'로, 등 번호는 90번이었다. 이승엽이 구단에 요청해서 구단에서 채용한 직원이었다. 거물 용병이었던 이승엽의 전담 코디네이터로 일본 측 소개에 따르면 코치 대우. 이만수의 화이트삭스 시절 불펜 캐쳐와 비슷하며, 인스트럭터는 이른바 비정규 코치로 국내 구단에서도 주로 외국 야구 지도자들을 전지훈련 때 등 임시로 몇 개월간 봉급을 주고 고용하는 형색으로 국내 구단에서도 꽤 많이 채용하고 있다. 하는 일은 다르고 1년 내내 채용했다는 점이 다르지만 일반적인 인스트럭터가 계약직이라면 김성근은 이승엽 계약기간 내의 무기계약직 코치같은 느낌으로 채용된 것. 당시 김성근의 주된 업무는 통역과 이승엽 본인의 멘탈 관리, 훈련 파트너 등이었다. 김성근의 코치 임명은 굉장히 독특한 사례였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코치 선발 시 선수 시절 및 코치 커리어를 매우 중요시하는데[* 다만 [[이시미네 쇼타|프로에서 대실패한 선수도 30대 초반의 나이에 잘만 코치가 되는 걸 보면]] 스타플레이어였거나 경험이 많은 선수만 코치를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이시미네는 1라운더 출신인데 일본 프로야구는 중세분위라 거기서 1라운더 출신이면 왕족같은 느낌이다. 심지어 중복 지명 출신이면 더욱.~~], 상식적으로 자국보다 야구 수준이 처지는 나라 인물에게 야구 코치를 한번에 정식으로 줄 리는 만무하다. 김성근이 일본 야구에 정통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의 일본야구 현장 경험은 야구 비명문고인 가쓰라고 야구부 뿐이었고, 실업야구도 2부 리그 수준 경력만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일본에서 리틀야구팀 지도자도 한 적이 없는데 그런 김성근이 비공식으로나마 치바 롯데의 인스트럭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승엽 덕택이 크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김성근 본인조차도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14/2016091400698.html|이승엽이 없었다면 지바 롯데에 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인정했으며, 이러한 경력은 이후 치바 롯데 순회 코치로의 정식 임명, 그리고 커리어 말년의 소프트뱅크 호크스 코치 임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youtube(B8U5mNxCvx0)] 리그 우승 당시 중계 영상. 1분 5초~10초 쯤에 잠깐 얼굴이 나온다. [youtube(D3NST419-Ws)] 일본 시리즈 우승 당시 중계 영상. 2분 22초 전후 쯤에 [[이승엽]]과 서로 부퉁겨안는 장면이 나온다. 이승엽의 의사 소통 문제 때문에 고용되었던 만큼 김성근의 역할은 통역이 우선이었고, 그 외에 이승엽의 훈련 보조를 해주는 정도였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14/2016091400698.html| 그래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하술하듯 이승엽과 김성근의 일화 중 김성근이 직접 타격을 지도하는 것은 1군 코치의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였기 때문에 카메라에 김성근이 와서 잠바를 걸어 놓으면 거기에 이승엽이 와서 훈련을 했다는 일화가 있기 때문. '거의'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약간은 했다는 말이기도 하고. 아무 지도도 안 했으면 구단에서 제지해서 굳이 잠바로 카메라를 가려가면서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승엽이 팀내에서도 워낙 몸값이 있던 용병 선수였던 만큼 이승엽이 김성근과 함께 구단 훈련장에서 훈련하는 것에 대해 당시 치바 롯데 구단 측에서도 적당히 눈감아줬다. 그리고 이승엽 전담 인스트럭터로 일하던 2005년 롯데가 구단 역사상 31년 만의 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하게 되는데, 이때 1군 선수진 사이에서 함께 우승의 기쁨을 누려보기도 했다. 이는 원년 OB 우승 이후 김성근 감독 커리어의 첫 우승이었다. > "이승엽의 베스트 스윙은 MLB에서 BEST 5 안에 든다, 하지만 그게 시즌중 5번 정도밖에 안 나온다." > "승엽아 너는 너만의 프로세스가 없다, 남들이 코치들이 만들어준 우물안에서만 논다" >"너는 너무 나약한 아이라서, 조금만 안되면 안된다고 포기해버린다" >"너만의 프로세스를 만들고, 포기말고 한계를 극복해라" >"연습만이 답이다" >"이승엽의 재능은 천재적이지만, 너는 한국에서 재능만 믿고 올라왔다" >"이승엽의 재능은 지바롯데 선수들 모두 인정했다" > ---- > - 김성근 >" 한국에서 최고의 타자라 불리던 우물안 개구리가 일본에서 처참하게 실패하고 망가진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김성근 감독님이 절 살려줬습니다." > ---- >"김성근 감독님은 타격 기술도 기술이지만, 선수로서 멘탈을 만들어주신분입니다." > - 이승엽 이 둘의 인연은 2006년 이승엽이 치바 롯데에서 요미우리로 팀을 옮기면서 끝을 맺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순수혈통주의|순혈주의]]로 굉장히 유명한 팀이다. 심지어 1군 감독의 경우 입단부터 은퇴, 이후 코치 생활까지 단 한번도 타 팀에서 활동하지 않은 완전 순혈의 원클럽 플레이어가 아닌 이상은 엄두도 내기 어려울 정도.] 이때 오히려 이승엽이 김성근에게 "김성근 코치에게 죄송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미안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https://m.mydaily.co.kr/new/read.php?newsid=202212250743906117|#]] 전술한 대화처럼, 이승엽은 이때 이후 김성근 감독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나중에 김성근이 한화에서 최악의 성적을 거두면서 많은 야구인들이 김성근에 대한 지지 멘트를 철회했지만, 이승엽만큼은 이후에도 김성근을 챙기는 발언을 두어 번 하여 논란이 된 적이다.] 실제로 이승엽은 그 이후로도 자신의 스승으로 김성근을 인정하는 발언을 꾸준히 하였으며, 이는 이승엽의 두산 감독 취임, 김성근 은퇴 이후인 최강야구에서까지 이어진다. [[https://m.mydaily.co.kr/new/read.php?newsid=202212250743906117|#]]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